보도자료

나의작품을 말한다 (28) 동화 도예가 김용득씨

최고관리자
2019.11.09 01:33 3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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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득 선생이 장작가마에서 동화 요변 도자기를 꺼내며 작품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1300도 장작가마의 화도를 이겨낸 도자기에 불꽃이 숨어 있다.

    이글거린다. 재벌구이를 끝낸 그 늠름한 자태에 매료돼 불속으로 뛰어들고 싶어진다. 이글거리는 그 불은 항아리와 호, 주병의 몸매를 휘감으며 좌우상하로 하염없이 솟구쳐 있다.

    도자기에 숨은 불의 모양도 천태만상이다. 자신을 태운 장작가마의 그 이글거리는 불 모양새를 한 도자기에서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기물은 예사롭지 않고, 동물 문양도 닮았더니, 급기야 산·나무·강의 모습으로도 변해 떡하니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다기보다는 이글거리는 불속의 구상·비구상 세계로 들어와 한바탕 불잔치를 하자고 유혹한다.

    정열이 잠자는 세상, 누군가에게 뜨거운 그 무엇이 돼 보지 못한 냉정한 가슴, 뜨거운 가슴이 거추장스러워 외면의 냉장고에 시원하게 들어가버리는 세태에 진홍색 불을 품은 완성된 도자기는 조소를 던지듯 활활 타오르고 있다.

    김해시 진례면 신월리 460-1 전통 장작가마 터인 ‘운당도예’ 전시실을 들어서면 불타오르는 도자기 작품들로 인해 냉기가 설치는 한겨울이 그리울 정도다. 이곳 운당도예에서 동화(진사) 요변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운당 김용득(56) 선생을 만나 도자기와의 인연, 이글거리는 도자기의 실체, 전통을 잇기 위한 열정, 전통을 지키기 위한 과제 등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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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꼴머슴 ‘도자기 머슴’이 되다

    1956년 김해시 진례면 송정리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어린 시절 많이 울었다. 그 시절에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가난해서 슬펐고, 굶주려서 울었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로 배를 달래기도 했던 김 선생은 응석받이 7살 때 이웃 부잣집 소꼴머슴으로 들어가 밥만 얻어먹는 신세가 됐다.

    김 선생은 초등학교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중퇴했다. 3남1녀 중 장남인 그는 공부보다는 동생 돌보는 일이 먼저였고, 남의 집 일손을 거들어 품삯을 받아오는 일이 공부보다 중했다.

    김 선생의 외할아버지와 두 외삼촌은 옹기장이었다. 집에 있는 게 힘겨워 외갓집을 찾으면 자연스레 웅기공장이 김 선생의 놀이터였다.

    처음에는 밥이나 얻어먹고 시간이나 떼우려고 찾은 외갓집이지만 한달 두달 놀러 가면서 태토와 옹기의 기물, 장작가마의 불길에 반해 소꼴머슴은 도자기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 14살때 옹기공장을 찾아갔다. 옹기장에게 부여된 사회의 천대를 뒤늦게 안 김 선생은 그 천대를 극복하는 길은 최고가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가마가 노는 날에는 혼자 땔감을 만들고 물레와 마주하면서 옹기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김 선생이 옹기에 심취해갈 때쯤 김 선생은 도자기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를 따라 찾아간 김해시장에서 아름다운 도자기를 처음 만난 것이다. 그후 낮에는 옹기 만드는 일을, 사람들이 없는 밤에는 도자기 만드는 일을 혼자 터득하며 도자기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갔다. 김 선생이 25살 때 본격적으로 도자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도내 원로 사기장 중 한 명인 종산 배종천 선생이 도자기 수비와 꼬막만들기를 거들어 달라고 해 본격적으로 도자기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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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득 선생이 자신이 만든 동화 요변 도자기를 설명하고 있다.


    ▲눈칫밥 먹으며 유약을 배우다

    옹기장이었던 외할아버지의 DNA를 몸속에 품고 있던 김 선생은 14살 때 배운 옹기를 25살 때 접고 도예의 길로 들어갔다.

    배종천 선생과 잠시 일을 한 뒤 김 선생은 지금은 폐쇄된 분성도예를 찾아간다. 이곳에서 백자항아리 성형과 수비를 본격적으로 익혔다. 백자항아리에 목단과 장미 문양을 구워내기 위해 서울에서 동화(진사)유약을 가져왔다. 하얀 항아리에 드러난 동화 목단은 김 선생을 몇 달 동안이나 흥분에 빠지게 했다. 동화 유약을 이용해 도자기를 만든다면 자신이 최고의 도공이 될 것이란 확신을 그때부터 한 김 선생은 분성도예에서 하인처럼 일했다.

    가마와 요장 청소를 구석구석 하고 가마주인을 하늘처럼 받들면서 마음을 얻어 유약 만드는 작업을 직접 구경할 수 있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장작가마의 불잉걸(가마불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모양)의 불자락을 도자기에 담는 첫걸음을 유약 배우기에서 시작했다.

    가마 주인에게 바짓가랑이를 붙들며 부탁해 유약제조 업무를 맡아 밤낮으로 유약을 연구했고, 중요한 데이터는 집에 돌아와 일일이 기록하기도 했다. 김 선생이 동화 유약을 신주단지 모시듯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화 1㎏이 너무 비싸 어지간한 가마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대 말에는 찻사발, 생활자기 등 제조품을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는 김해요업에서 3년간 일한 적도 있다. 재일교포 사장과 일본인 기술자 밑에서 일을 배웠는데, 수비·유약·성형·가마불 때기 등 가마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을 체계적으로 익혔다.

    김해요업에서 김 선생은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들의 유약자료를 힘겹게 입수했다. 당시 일본인 기술자가 조선도공이 정리한 유약자료를 가져왔는데, 몸이 아파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자 교포 사장이 김 선생에게 유약 자료를 넘길 것을 부탁했으나 일본인 기술자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그때 김 선생은 일본인 기술자와 1대1 면담을 하면서 전수를 애원했고, 조선도공의 ‘재유’비법을 입수하게 된 것이다.



    ▲동화잉걸호! 장인의 숨결을 담다

    김 선생의 주력 분야는 ‘동화(진사)’작품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진사’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동화’라 했는데, 일제가 우리 동화를 진사로 불러버려 동화라는 이름이 잊혀져 왔다. 전수 받은 재유와 동화, 무유, 금결정, 천목 등 모든 유약을 독특하게 개발해 사용했던 김 선생은 동화를 주력으로 매달려 왔다.

    김 선생은 1984년 설립한 금지도예에서 동화를 개발하면서 기름가마에서 연구해 왔으나 스스로 장작가마에서 본격 창작하겠다는 일념으로 1992년 현재의 운당도예(http://undangdoye.com)를 짓고 동화작품 위주로 창작하면서 조상들이 사용해온 전통 유약을 자신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처음 장작가마를 땔 때 유약과 장작의 속성이 잘 맞지 않아 힘들게 만든 작품들을 깨버리는 일이 물레를 돌리는 일보다 많았다. 초벌도 아니고 재벌구이 6가마를 내리 깨버린 일은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라고 한다. 그나마 김 선생 자신이 나무를 산에서 직접 구해오고 유약을 만들었기 때문에 초기 자금이 많이 들지 않아 과감한 창작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전국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동화잉걸호, 동화잉걸항아리, 동화잉걸부부상이 탄생했는데, 작품마다 오직 그 하나뿐인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옹기 10년, 도자기 31년 경력의 소유자인 김 선생은 “지금도 가마를 땔 때면 가슴이 조마조마할 정도로 전통 장작가마는 최종 가마를 꺼낼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작업”이라며 “동화와 금결정, 천목유 등 유약을 직접 만들어 쓰지만 배율이 어려워 잘 안먹힐 때가 많다”고 창작의 어려움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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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득 선생이 물레작업을 하고 있다.


    ▲“제자 양성해 전통 기술 전수하겠다”

    그런 김 선생은 지난 2009년 말 각고의 연구 끝에 동화유약 제조기법에 대해 특허를 받아냈다.

    김 선생의 작품에는 부부상이라는 게 있는데, 이 부부상이 참 재미가 있고 인기도 대단하다.

    크기가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고, 아랫부분이 맞닿게 한 작품을 금실부부상, 윗부분이 붙은 것을 해로부부상, 몸통이 붙은 작품을 부귀부부상으로 명명했다. 이들 세 가지 부부상은 특허청으로부터 2008년 디자인 등록, 2009년 상표등록, 지난 4월 실용신안등록을 모두 마친 작품들로, 한마디로 특허품이다.

    부부상은 핵가족 시대에 전통 장작가마 수천도의 불길을 견딘 도자기의 기(氣)를 받아 부부가 화목하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아이디어 도자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창작품이다.

    현재 김 선생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의 밑에서 물레를 배운 아들을 가마로 불러들일 구상을 하고 있다. 가마에만 빠져 있던 아들이 세상물정을 몰라 세상으로 내보냈는데, 이제는 불러들여 체계적인 전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선생은 도자기공예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으로 인정받기 위해 김해에서 태어나고 배웠고 살고 있는 만큼 김해에서 뼈를 뭍는다는 각오로 작업하고 있다. 이미 그는 지난 2009년 제3회 경남최고장인으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김 선생은 “꾸준히 해 왔듯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가르쳐주고 전수하겠다. 동화 분야에서 ‘최고다’ 할 수 있을 정도로,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최고의 ‘동화잉걸호’를 만들겠다는 장인의 눈동자에 장작가마의 불잉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글=조윤제기자 cho@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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